예수영접모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분에게 천국과 지옥에 대해, 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나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더니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하셔서
영접기도문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과 지금까지 나의 마음 앞에서 기다리셨다는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에 영접기도문을 읽으시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신 후에도 무언가 밝지 않은 모습에 질문을 드렸더니 “자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좋은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 자신이 없어 부담감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이 어려워하셨던 이유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해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죄에서 용서해 주신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은 좋은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아직 자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분은 사람들과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상대가 변하지 않는 한 의리를 지키시는 성격을 지닌 분으로,
“예수님을 영접해 놓고 그분의 말씀대로 온전하게 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는 것은 이제 막 영적인 어린 아이로 태어났다는 것이니 하나하나 배우면서 하시면 됩니다.
만일 성도님의 어린 자녀가 울고 있어서 '왜 우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해 울고 있다'고 대답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특해 하면서 나중에 크면 그 때 잘 모시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은 과정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완전하려고 하는 것은 선행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그제야 밝게 웃으셨습니다.
참으로 멋진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분은앞으로 예수님을 많이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완전이 아닌 과정입니다. 완전하신 분이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신앙생활을 ‘자라난다’, ‘닮아간다’ 등으로 표현하거나
‘어린 아이, 청년, 아버지’로 신앙의 성장단계를 나뉘어 묘사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에 있어서도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작은 아들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때가 있었고,
이러한 나를 하나님께서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변함없이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큰 아들과 같이 열심히 살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열심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나의 힘줄을 드립니다’고 나를 내려놓는 헌신을 했지만
이 역시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 고난주간 기도회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드리는 옥합속에 ‘죄로 인해 죽은 박태진’을 담아드렸고, 58년 만에야 제가 오른편 강도임을 고백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기대가 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에베소서 4:15)
-박목사-